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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흥은(1정) 작성일 2016-12-22
제목 리들리 스콧 감독, 코맥 매카시 각본의 영화 <카운슬러>. 조회수 2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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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과를 두고 우리는 늘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유야 가지가지다. 명백한 것은, 그 이유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절대 필수불가결한 것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나'다. 때로 그 이유들이 말도 안될 정도로 억지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들은 그것을 '부조리'라고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 코맥 매카시 각본의 영화 <카운슬러>는 말하자면 '부조리'에 대한 영화다.

 

사실 이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라기보다는 코맥 매카시의 영화라고 불리는 편이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코맥 매카시의 작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떠올려보자. 그의 작품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지만, <카운슬러>의 서사를 이해하려면 앞서 이 작품에 드러난 '우연'과 '필연'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는 편이 더 용이할 것이라 생각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안톤 쉬거'는 독특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의 세상에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필연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관계된 대상은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다만 자신과 관계되지 않은 인물, 즉 창 밖 너머의 인물에 대해서는 그 '인연'이 없기 때문에 죽이지 않는다. 당위성이 없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시선에서 봤을 때, 이것은 심각한 부조리다. 살해당하는 당사자로서는 안톤 쉬거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죽인 건지 알 수 없다. 인과의 당위성은 오로지 안톤 쉬거라는 이해불가능한 살인마의 잣대에 따른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그런 우연과 필연의 부조리를 하나의 인물로 물화시켰다면, <카운슬러>는 같은 주제성을 주인공 '카운슬러'가 처한 상황으로 이끌어냈다.


<카운슬러>는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한 변호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아름다운 애인과 결혼을 앞두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사업 파트너와 마약 밀매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가 순전히 '선의' 혹은 '의무감'으로 보석금을 대신 내준 의뢰인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데, 알고보니 그 의뢰인의 아들은 마약 밀매의 행동대원이었고 밀매 조직은 카운슬러가 정보를 판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쫒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카운슬러가 처한 상황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는 의뢰인의 아들이 마약밀매 조직원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심지어 얼굴조차 모른다.(그는 그저 보석금을 내줬을 뿐이다.) 서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정말 '재수가 없는' 일이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연히 마약 조직원을 풀어주고 그 책임을 떠맡게 된 카운슬러는 당혹감을 넘어서서 황당할 지경이다.

게다가 그의 직업은 변호사다. 논리와 세 치 혀로 돈을 버는 사람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무차별적인 폭력과 악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칠 뿐이다. 이것은 연결책인 그의 동료의 입을 빌어 노골적으로 작품에서 제시된다.

<카운슬러>의 각본은 치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설명이 노골적으로 생략된 부분이 많고, 아예 그런 의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딴 거 알아서 뭐하게? 어쨌든 넌 잡혀서 토막날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을 보는 내내, '이 작품의 서사는 빈약하고 말도 안될 만큼 과장되었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논리에 맞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아주 단순하고 불편한 사실이 여기서 드러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카운슬러>의 이러한 각본은 영화적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차라리 소설적이다. 어쩌면 코맥 매카시가 처음으로 소설이 아닌 각본으로 집필한 이 작품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상으로 소설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의 각본이 '훌륭하다'라고 말은 하지만, 이 작품이 '훌륭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맞지 않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비티>가 가진 영화적인 성격의 극단과는 상반된 성격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비티>가 3D효과와 연출력으로 영상예술의 어떤 극단에 도달했다면, <카운슬러>는 시각적인 연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대사와 정적인 장면을 통한 연출에 치중했다. 가령 작품의 결말을 장식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품 초반에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관객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러한 기술은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종류의 연출이다. 정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석을 살리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고, 그 과정에서 리들리 스콧과 코맥 매카시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빛내주는 것은 각본 뿐만이 아니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고, 그야말로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주연진 중에서는 가장 신인에 가까운 마이클 패스밴더조차 할 말을 잃게 만들 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역시 카메론 디아즈가 아닐까 생각된다. 발랄하고 미소가 아름다운 섹시스타 이미지였던 그녀는 작품 시작부터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데, 첫 장면에서 카메론 디아즈의 모습을 보고 개인적으로는 꽤나 충격적인 인상을 받았다. '저 배우가 저런 얼굴을 할 수 있었구나'하는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비록 다소 나이를 먹고 예전같은 미모는 보여주지 못하지만(특히 페넬로페 크루즈와 같이 찍은 장면에서는) 무게감이나 연기력은 확실히 돋보였다고 생각된다. 다만 대사의 비중이 큰 이 작품에서 카메론 디아즈는 다소 대사 전달력이 약하다는 기분을 씻을 수 없다.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된다.


평점에 대해서는 난감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객관적인 평점을 주고 싶지만 이 작품이 일반 관객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다. 무척이나 잔혹한 이야기고, 또한 그것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른바 매니악한 평론가들에게 먹힐만한 작품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각본과 연출이 주는 재미와 그 깊이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카운슬러>를 보고 즐겁지는 않을 지언정 많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명 배우들의 호연은 단순히 '이상하고 불쾌한 이야기'만으로 외면하기에는 아까운 감이 크다.

말하자면 중국의 까치집 요리나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처럼, 처음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고 불편하지만 맛을 음미할 수 있다면 그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최고급 요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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