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산업카운슬링
산업카운슬링 자료실
작성자 : | 김홍구(1정) | 작성일 | 2014-12-26 |
---|---|---|---|
제목 | 귀 이야기 | 조회수 | 3235 |
첨부파일 | |||
첨부파일 | |||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 구경은 물론 가족들의 얼굴도 본적이 없었겠지요. 봄에 피는 화사한 진달래나 개나리, 여름의 우거진 짙푸른 녹음,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 겨울의 하얀 눈,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 신비스런 낙조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한 없이 포근히 감싸주는 어머니의 모습, 툭하면 장난치는 동생들의 얼굴, 늘 자기를 측은히 보는 것 같은 이웃집 아줌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무 불편 없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두 눈 대신 두 귀가 주변에 일어나는 온갖 풍경과 모습들을 다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은 꿈에 하느님을 만났다고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물어 보았습니다. “ 하느님의 모습이 어떠하셨어?” “너무나 향기롭고 부드러웠어요.” 그림으로 그려진 것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냄새나 촉감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런데 이 사람이 드디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돈을 번 누나가 돌아와서 비싼 수술을 받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방면의 유명한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수술 중 내내 그동안 그리웠던 어머니의 모습, 누나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눈을 가리고 있던 답답한 붕대를 푸는 순간, 그동안 목소리로만 알고 있었던 가족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게 되면서, 너무나 감격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고 주변 모두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어 눈에 들어오는 신기하기만 한 주변의 많은 새로운 광경들은 또 다른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잔뜩 안겨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매일 매일을 마치 꿈꾸듯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면서, 이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한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게 된 모든 것들이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것보다 슬픔과 실망을 안겨주는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세상이 두 귀를 통해서만 들어올 때는 그럴 수 없이 행복했었는데, 두 눈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은 왜 그렇게 실망만 주는지 이 사람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옛날보다 점점 말이 줄어들고 우울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이 사람은 어머니 앞에 다가가 간청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 말씀 드릴 게 있어요.” “뭔데 그러니?” “내 눈이 안 보이게 다시 수술 받도록 해 주세요.” 위 이야기는 젊은 시절, 사회생활을 갓 시작할 무렵, 어느 스님의 명상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실화인지 아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사실 여부를 떠나 ‘눈으로 보는 세상’외에 ‘귀로 듣는 또 다른 세상’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위 일화의 주인공에 의하면 보이지는 않고 귀로만 들을 수 있었던 삶이 더 행복했었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그 당시엔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9세기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로렌트 오킨’의 “눈은 우리를 바깥 세계로 데려가고, 귀는 세계를 우리에게로 가져온다.”는 말을 접하고서야 그 장님의 세계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영화나 TV드라마를 보게 되면 나는 온통 그 속으로 빠져들어 나는 없어집니다. 약간의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행복감, 안정감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없어지는데 내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TV를 바보상자라고도 말하는 가 봅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귀로만 소리를 듣는 것은 어떻습니까. 귀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들은 나의 내면을 가슴 뿌듯한 온갖 것으로 채워주는 듯합니다. 그 소리가 아름답고 고요한 소리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러니 귀가 신비한 것입니다. 귀가 도대체 뭐기에? 그래서 귀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습니다. 귀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알프레 토마티’(일생동안 귀만 연구한 사람, 1920-2001년)에 의하면 귀는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된 후 4개월 반 만에 그 조직이 다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다른 기관들은 10대 후반까지 계속 성장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귀의 달팽이관은 불과 135일만에 다 자란다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언어발달은 뱃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 뱃속에서 귀가 재빨리 자라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는 것이지요. 태아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두뇌가 발달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말하자면 전자제품의 초기 세팅하듯 태아의 두뇌는 어머니의 소리를 통해 뇌의 기본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귀의 첫 번째 의무가 태아의 뇌 성장의 기초를 닦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알프레토마티의 말에 의하면 태아를 가진 산모는 태아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산모와 태아와의 대화의 양에 따라 태아의 두뇌발달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다만 산모는 아무 스트레스 없는 평화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필수랍니다. 산모의 지나친 스트레스가 태어난 아이의 자폐증의 원인이라고도 하니까요. 우리의 며느리들의 알아야 할 이야기지요. 가장 먼저 완성되어 중요한 역할을 하던 귀는 또한 가장 오래도록 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뇌사 상태에서 임종을 앞에 둔 사람도 말도 못하고 눈도 보이지 않지만 귀는 들린다고 하네요. 그래서 뇌사상태라도 말을 듣게 되고 눈물도 흘린다는 것입니다. 귀가 닫혀야 생명이 끝나는 것이라는 거지요. 뇌사 상태에 있는 재벌 아버지가 전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아들, 며느리, 사위, 딸 들이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늘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회복 되고 나서 쓰러지기 전에 작성했던 유언장을 깡그리 고쳤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요 이러한 사실들을 감안하면 눈은 인간의 영역이지만 귀는 신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보고 싶으면 보고,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 눈을 의미하는 인간의 영역 대신에, 우주가, 자연이,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언제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귀는 인간의 마음대로 여닫을 수 없도록 한 것이리라 봅니다. 이 섭리에 우리는 순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이 주는 메시지는 언제든 겸허히 받아야하며 말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눈은 떠야 보이지만, 귀는 가만히 있어도 들립니다.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것과 내가 의식을 하고 듣는 듣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영어의 표현을 빌리면 들림은 hearing이고 듣기는 listening입니다.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뭣일까요. 이 두 명사를 수학 방정식을 이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Listening = Hearing +마음 다만 여기서의 ‘마음’은 관심과 집중, 사랑과 배려 등을 함유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마음이 실리지 않은 듣기는 제대로 된 듣기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로 듣기 위해서는 영혼의 훈련과 명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모든 생명을 공경하고 자비심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단계라는 것이지요. |
|
|
![]() |
이전글 | 현실치료사례 | 2015-01-01 |
![]() |
다음글 |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 2014-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