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주중에 바쁘게 지내면서 주말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10월 중순부터 12월 방학 전까지 바쁜 스케줄로 다이어리가 새까맣게 채워져 있는 터라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빨래며 청소, 옷 정리와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까지 다음 한 주일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함께 교육을 시작한 동기들과 어울림이 더욱 기대되기도 하였고 오는 겨울 지방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 생각으로 어찌어찌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한 집단을 이루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명분이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쭈볏거리며 시작했던 첫 시간에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음악과 더불어 경직되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어쩌면 스스로 무장해제 하고자하는 준비된 마음이 있었던 까닭이겠요), 인간관계에서 허다하게 나타나는 부탁과 거절과 관찰자의 마음을 경험하면서 나 스스로 평소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던지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며, 돌아가며 팀장으로 추대된 후 던져진 질문에 빠르고 명확한 대답으로 요구되었던 순발력은 평소에 막연하게 느껴왔던 생각을 짧게 정리하도록 돕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비록 건강에는 나쁘지만 안개가 자욱했던 가을의 여의도공원 운치는 근사하였습니다.
눈을 감고 타인의 팔 하나에 의지하여 산길을 걷는 동안에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의 감각이 놀라운 기능을 발휘함을 느꼈고,
나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역할을 믿지 못하고 내 주관만 고집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훌륭한 오너는 지시하기보다 직원의 역량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맡기는 거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능력(?)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자녀가 만들어 진다던가요.
훌륭한 엄마는 못되더라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욕구가 많았던 저는, 요즈음 들어 저의 그러한 욕구가 도리어 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많기에 그냥 바라보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양육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블라인드게임은 이러한 제 마음과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장애체험’이라는 주제로 오래 전에 꼭 같이 해 보았지만 ‘같은 경험, 다른 생각’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였던 저는 빨강이었습니다.
빨강이 좋았고, 빨강이고자 했고, 그래서 그냥 빨강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보고 사람들은 파랑이라고 말을 하네요. 곁에서 불렀지만 파랑이 누군지 도대체 몰라 대답도 않고 무심히 앉아 있었습니다.
친절한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며 ‘파랑아’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빨강일 거라 여기고, 빨강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낮설고 불편한 파랑이라는 이름은 언제쯤 익숙하게 다가올까요.

누구나 스스로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1박2일 동안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하였던 처음과 달리,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참석하여 서로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생각들을 들어보며 더불어 내가 아는 나와 보여 지는 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