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이산어록(正祖李祘語錄) - 두려움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무리가 있어야 한다. 나는 보통 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 끝마무리를 구한다. 심지어 글씨를 쓰거나 오락하는 것까지도 시작만 있고 끝마무리가 없은 적이 없었다."

더운 여름날을 핑계로 독서를 게을리 한다거나 서늘한 곳을 찾아다니며 책을 읽는다면 '싫다는 감정'이나 '귀찮다는 느낌'을 극복하고 책 속에 있는 '깊은 뜻'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지로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글씨를 쓰다가 '지겨워' 그만두거나 활쏘기를 하다가 어깨가 아프다며 목표량을 채우지 않고 활을 던져버리면 그날의 하루 일과를 잘 마무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조는 "오락까지도 시작만 있고 끝마무리가 없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두려움을 아는 것'이란 스스로 정한 약속을 파기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조절하여 그것을 지켜내는 것을 말한다. 정조는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라." 등의 문구를 가슴에 새기고, 글로 써서 벽에 붙여놓고 날마다 살폈다고 한다. 사람이란 늘 긴장하며 살 수 없기에 스스로 정한 규율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그것을 알기에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곳에 자기관리가 될 수 있는 문구를 걸어놓으라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약속은 잘 지킨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지켜보기 때문이고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로 인해서 사회적인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조가 규장각 신하들에게 말하길 "내 나름대로 기록하여 두는 것이 있는데, 아무리 정사가 바빠도 반드시 이를 쓴 뒤에야 잠자리에 든다. 이 역시 지키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하였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처리해야 할 정무와 정령은 그날 처리를 끝내고 개인적인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글을 쓴다는 말이다. 매일의 그러한 점검이 심신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또한 정조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신하들에게 종종 묻기를 "그대들은 근래에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 하였는데, 신하들이 읽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정조는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를 보느라고 여가가 적기야 하겠지만, 하루 한 편(篇)의 글을 읽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과정을 세워 날마다 규칙적으로 해나간다면 일 년이면 몇 질(帙)의 경서를 읽을 수 있을 것이고, 몇 년간 쉬지 않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칠서(七書)를 두루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따로 독서할 날짜를 구하고자 한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때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세손 시절부터 정조는 나름대로 기록해두려고 시간을 쪼개어서 쓰는 글이 있었다. 그것이 『존현각일기』이다. 일기란 그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일이면서도 큰일이 없으면 쓰지 않기도 하고 쓰다가 중도에 포기할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정조는 자신과의 약속으로 그 일기를 써 온 것이다. 『존현각일기』는 즉위 이후에 『일성록(日省綠)』으로 쭉 이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려움 (정조이산어록, 2008. 1. 25., 고전연구회 사암, 손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