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이산어록(正祖李祘語錄) - 절제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 이 구절은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벽에다 써 붙여서 날마다 살피는 자료로 이용해야 하겠다."

정조는 왕실의 적통을 이어받았으나 세손 시절부터 수차례의 암살위협에 놓여 있었고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담을 넘어 들어와 목숨을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정도로 입지가 불안하였다. 그것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왕이 되어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 복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기인된 일이다. 정조가 원천적으로 왕이 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정조는 이러한 방해에도 왕이 되었다. 정조의 즉위 이후에도 이러한 위협은 계속되어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두렵고 달걀을 포개놓은 것처럼 위태롭다."고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에 적어놓았다.

정조가 세손 시절 밤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고 학문을 한 것은 불안한 생활에서 나온 일이 아니었을까.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궁궐생활에서 책만이 동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생활은 습관처럼 독서를 생활화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독서만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된 것이다. 정조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책을 본다."는 것은 죽음의 위협에서 건져 올린 그의 '낙'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독서습관이 단순히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방편만은 아니었다. "책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꾸준하게 책을 가까이 하고 공부하다 보니 새로운 지식을 쌓는 즐거움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독서는 생활습관으로 변하면서 규칙을 만들게 되고 그 규칙을 일상화시키면서 자기관리를 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관리는 '절제'하는 생활을 동반한다.

정조는 해야 할 일은 용기 있게 곧바로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용기 있게 결단하여 곧바로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즉 '절제'란 용기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조가 한 말이 있다. "이미 깨달은 의리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많다. 혼자서 가만히 점검해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과감하게 실천할 뜻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너무 성급하게 하면 도리어 일에 해가 될까 염려하여 차일피일 시일만 넘기고 말았다." 과감하게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현을 다스리는 관리가 모자람이 있다면 그는 부끄러워하고 조심하며 고을을 다스릴 것이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 관리는 그 능력을 과하게 자랑하고자 한다거나 다른 쪽으로 백성을 쥐어짜는 데 허비할 수도 있다. 그것은 고을을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관리가 이러한데 임금은 어떻겠는가. 절제하지 못한 임금은 나라의 파란을 몰고 올 것이다. 그러니 정조는 "절제란 행동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구분을 지키는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다.

세손 시절부터 긴 인연을 가졌으며 자신을 도운 최측근이었던 홍국영이 자신의 세력을 지키기에 급급해 왕통을 바꾸려 하자 정치적인 파산선고를 내려 내친 정조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자기관리에 충실했는지 알 수 있다.

정조는 독서를 자기 생활의 표본으로 삼으며 규칙적인 독서습관으로 방대한 양의 독서와 저서활동을 이룩하였다. "무릇 사람은 위아래를 막론하고 하루에 해야 할 일을 그날 끝마쳐야 한다."라고 한 정조의 말을 기억하자.

[네이버 지식백과] 절제 (정조이산어록, 2008. 1. 25., 고전연구회 사암, 손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