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문제에 대비하면서 가장 큰 장애 요인 중 하나는 우리가 산업사회의 일자리 개념에 너무 익숙해 있다는 점이다.

산업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일자리는 전일제, 정규직 임금 노동이다.

이런 산업사회에서의 일자리 개념은 농경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산업사회에 형성된 전일제, 정규직 임금 노동이 이상적인 일자리 개념은 아니다.

농경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산업사회에서의 일은 주로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지,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문제는 인간적인 삶을 초기하고 노동을 팔아 경제적인 안락을 추구하는 전일제, 정규직 임금 노동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그런 일자리를 선호하게 되었다는데 있다.

2013년에 갤럽이 전 세계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겨우 13퍼센트만이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했다고 한다.

꼭 수치로 된 이런 조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산업사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가 유지되는 일자리를 가진 사람의 비율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산업사회의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고집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않을까.

그보다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일자리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계기로 삼는 게 더 바람직하다.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한 끼를 배불리게 해줄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을 배불리게 줄 수 있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이 속담을 산업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일을 해야만 먹을 것을 주겠다는 위협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이자 남아프리카에서 빈곤퇴치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제임스 퍼거슨은 그의 저서 <분배정치의 시대>에서 이 속담의 모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어업은 과거와 달리 아시아의 양식업에 상당 부분 의존하며, 일반 어업의 경우 고도로 자본화·기술화된 특정 기업들이 독점하는 상태다.

따라서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속담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 생태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분배가 아닌 생산에서 탈빈곤의 해법을 찾으라는 모순된 가르침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라고 핑계를 대면서, 그들의 물고기는 자본을 앞세운 양식업으로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아무리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더라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다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 시대가 되어 어떤 사람에게 자기 대신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해줄 로봇을 주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물론 물고기를 잡던 그 사람의 일자리는 사라지겠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그 사람에게 보다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들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는 이미 1950년대에 <인간을 이용하는 인간>에서 “자동화 기계는 그야말로 경제 분야에서 노동하는 노예나 다름없다.

그런 노예와 경쟁을 벌이는 노동자라면 그 노예의 노동 조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설파했다.

위너는 인공지능 시대가 되어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고 반발할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간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을 바꿔보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김송호, "인공지능 공존 패러다임" (2019, 물병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