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쓴 소네트 73번은 제가 가장 애송하는 시입니다. 전체 153편의 시중에서 시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시입니다. 특히 이 시는 중년남자가 가을에 읽으면 제 맛 이 납니다. 시를 말하는 사람이 중년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시를 번역하는 가운데 원래 시가 가지고 있던 운율과 이중 의미 등이 사라지기 때문에 원어로 읽어야 시의 제 맛이 나기는 하지만 이 시는 번역을 해도 본래의 서정성과 구조가 드러납니다.

그대 나에게서 일 년 중 그 계절을 볼지니

노란 잎이 다 떨어져 없거나 아니면 몇 닢만 남은 때를

단풍이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는 삭풍에 흔들리는데

최근까지 고운 목소리의 새들이 합창을 하던 곳.

그대 나에게서 하루의 석양을 보게 볼지니

일몰 후에 서쪽에서 희미하게 사라지는 석양을

검은 밤은 죽음의 사촌, 석양을 야금야금 훔치며

모든 것을 휴식 안에 잠들게 한다.

그대 나에게서 불꽃의 섬광을 볼지니

젊음의 재위에 누워있는 그런 불꽃을

불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난후

소진한 채 병상에서 꺼져간다.

그대 이것을 알지니 그러면 그대의 사랑이 강렬하여

머지 많아 두고 가게 될 모든 것들을 사랑하리라.

이시에서 “그대 나에게서 볼지니”라는 구조가 표현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대 나에게서 이 계절을 볼지니,” “그대 나에게서 석양을 볼지니,” “그대 나에게서 불꽃을 볼지니.”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면서 다음에는 시인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기대하게 됩니다. 독자는 시인이 자신을 가을에, 석양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섬광에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시의 묘미는 세 가지 비유가 가지고 있는 이중의 의미에 있습니다. 가을은 계절인 반면 석양은 하루 중의 한 시간대이고 섬광은 찰라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이 갈수록 짧아진다는 것을 이 비유를 통해 말합니다. 가을이 몇 달 지속된다면 석양은 몇 십분 섬광은 몇 초 간 계속됩니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시는 인생의 슬픔을 노래한 시가 아닙니다. 비록 인생이 가을에서 석양으로 석양에서 불꽃으로 변하면서 그 마지막을 향하여 질주하지만 그러나 인생의 밝기는 점점 더 밝아집니다. 인생의 남은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짧아지는 반면에 인생의 조도는 이에 반비례하여 밝아집니다. 석양이 가을의 단풍보다 더 밝은 것처럼 섬광은 석양보다 더 밝습니다. 섬광은 밝다 못해 보는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합니다.

결국 인생은 짧게 섬광을 내며 사라집니다. 그러나 섬광은 주위의 모든 것을 일순간 비춥니다. 이 섬광은 젊음을 태워서 나는 빛입니다. 비록 젊음이 다 타고 재가 남지만 그 재위에 마지막 불꽃이 일어납니다. 죽음은 젊음을 태우고 마지막으로 내는 불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가장 밝은 순간이요 완성의 순간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죽음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보았습니다.

인생의 가을을 지나서 겨울에 들어선 저에게 이 시는 나머지 인생동안 무엇을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남은 인생동안 사랑의 불꽃을 피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곧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야 할 사람들과 내가 가진 것들을 더 강렬하게 사량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