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이산어록(正祖李祘語錄) - 독서

"독서는 체험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참으로 정밀히 살피고 밝게 분변하여 심신으로 체득하지 않는다면 날마다 수레 다섯 대에 실을 분량의 책을 암송한다 한들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독서는 간접체험을 하는 것이다. 선현들의 말씀으로 지식을 축적하고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체득하는 일련의 행동이다.

정조는 수많은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며 깊이를 넓혀나갔다. 한두 가지 책에 치우치지 않았으며 다양한 책을 섭렵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축적되는 지식의 깊이도 다르다.

정조는 먼저 경서를 통하여 옛날 성인들의 철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성인들의 철학을 도(道)라 정의한다면 도(道)를 알아야 세상을 알 수가 있고 세상을 알아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것의 바탕은 도(道)다. 그것은 선비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의 말을 이해하고 널리 인용하여 여러 가지 문제들을 토론하고 풀어나가는 것은 좋은 마음가짐이다. 또한 옛 성인들의 문장에서 웅장함과 빼어남을 보고 배우고 글자에서 조화로움을 알아낼 수 있다면 삶에 있어 크나큰 즐거움을 가지는 것이다. 『시경』에는 칭송과 풍자가 있고, 『서경』은 고(誥)와 훈(訓)에 충실하였고, 『춘추』는 포폄(褒貶, 옮고 그름, 혹은 선악을 판단하여 결정)을 엄히 하였다. 정조는 국가의 중대 논의 때마다 『시경』과 『서경』을 인용하였다.

이렇게 경서를 탐독한 후에는 역사책을 보아 세상이 어떻게 유지되었으며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보고 그 사건이 발생한 연유와 그 주변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역사책을 통해서 다양하게 많은 사건을 접해 경험을 축적해서이며, 한 인물을 보고 그의 내력과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 또한 역사서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하여 전 시대를 통해서 오늘을 비추어 앞으로 나갈 바를 알아내는 것이다.

역사책을 읽고 난 후에 선현들의 문집과 문장을 느낄 수 있는 책들을 선별해 읽어야 한다. 많은 독서 속에서 자신의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다만 패관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혀 해치게 되니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조가 경연(經筵)이나 가까운 신하들과의 토론에서 틈틈이 하교하고 추천했던 일이 '조금씩이라도 독서를 생활화하라'는 것이었지만 규장각 관리나 조정 대신들의 독서습관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조는 늦은 밤 숙위소에 불이 켜져 있으면 방문하여 같이 토론을 하거나 야참을 보내 격려했다고 한다.

정조는 독서 계획을 세워놓고 독서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매일 얼마씩이라도 책을 가까이 하려 하였고 더운 여름날에 책을 읽음으로 시원함을 느낀다고 하였다.

정조는 "동이 틀 무렵에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펼쳐 해야 할 것을 확인 후에 경외(京外)의 계독(啓牘, 서울 밖에서 올라온 상소문이나 기타의 글이 담긴 궤)을 가져다가 처음부터 상세히 읽고 나서 비답(批答, 임금이 상주문의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을 입으로 불러주거나 직접 쓰며, 또 틈틈이 활을 쏘아 덕(德)을 보고 책을 읽어 뜻에 맞도록 하니, 한가한 시간에도 학문을 하는 것이고 바쁜 시간에도 학문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빼어난 실력을 가진 활쏘기조차도 평정심을 기르고 집중력을 키우는 데 활용을 하여 책을 읽는다니 독서(讀書)는 정조의 가장 큰 낙(樂)임에 틀림이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서 (정조이산어록, 2008. 1. 25., 고전연구회 사암, 손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