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존경해 마지않는 겨레의 영웅이며 스승이신 이순신 장군 삶만큼 드라마틱하고 눈물겨운 경우도 드물 것이다. 명문 양반가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조부가 사화에 연루되어 역적의 자식인 상태였고, 따라서 부친은 벼슬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셨기에 생활은 곤궁했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외가에서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과거를 통해야만 벼슬에 나갈 수 있기에 과거시험 준비를 해야 했는데, 20세초까지는 문과의 과거를 준비하였으나, 무관이신 장인의 영향으로 무과로 전환하는 바람에 과거시험 준비가 그만큼 늦어지게 되었다.

 28세에야 처음 과거를 볼 수 있었는데, 과거시험 도중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시험은 허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까지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주어 과거시험에는 실패하였으나 과거장에 뜻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32세에야 과거에 합격하게 되는데, 병과에 속하는 중간 수준의 성적이었다.

 이순신장군의 생애는 이처럼 탄생배경과 성장기, 사회적 출세와도 관련된 과거의 급제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남들보다 유리한 것은 없었다. 그 이후 관직은 국토의 북쪽 변방지역의 종9품 하급 무관으로 출발하여, 훈련원 봉사로 몇 년간 서울 중앙관서에 근무한 것을 빼고는 거의 지방과 변방지역을 수호하는 자리를 전전하였다. 또한 45세에야 겨우 작은 고을이나마 한 지역을 다스리는 사또가 되었을 뿐인데 그가 처음으로 다스린 정읍현감자리는 종6품 품계의 벼슬아치가 맡는 자리였다.

 이순신장군은 능력과 임무 수행노력들을 고려할 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도 관직에서의 진급상태가 매우 늦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47세인 1591년 2월에 정3품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로 발탁되었다. 친구인 좌의정 류성룡의 천거도 있었고, 당시의 상황이 평시와는 달리 능력이 있는 사람을 특별 발탁하는 제도가 적용된 특별 승진의 덕을 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당시의 조선이 처한 위기에서 볼 때 구세주를 선택한 형국이 되었다. 이후 이순신은 놀라운 위기대응 능력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중에 그가 보여준 활약상은 단지 조선의 명장으로서 만이 아니라 오늘 날 인류의 역사에 빛나는 가장 위대한 인물로 존경받을 만치 놀라운 업적을 보여주었다.

이순신 장군은 평생을 자신의 소신과 원칙에 따라 살았고, 공직에서의 임무도 그리 수행했건만, 3번의 삭탈관직과 수시로 겪은 좌천, 2번의 백의종군뿐 아니라 죽음의 위기에 몰리기까지 하였다. 또한 전라좌수사와 조선 최초의 관직인 정2품 3도 수군절도사로 지냈던 8년 동안도 권좌의 힘과 영예를 누리며 보낸 시기가 아닌, 풍전등화와도 같은 조선에서 임금도 보여주지 못했던, 유일한 희망을 온 백성에게 보여주며 희생했던 시기였다.

흔한 말로 승진기회를 잡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칙적인 방법과 술수를 사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데, 이순신은 같은 집안 조카벌인 율곡 이이가 만나자하는 것도 그가 이조판서이기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거 없다며 거절하였고, 병조판서가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을 높이 사, 가까이 곁에 두고자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고 하였을 때에도 세상 이목을 따져 사양한 분이다. 누군가는 이순신 장군을 요령 없고 앞뒤가 막힌 사람이라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는 철저히 자신의 품격을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지키고 극복해낸 특별한 인물이다. 오늘날에도 갖은 지식과 방법을 통해 남보다 유리하고 빠른 방식으로 앞서가거나 나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혈안이 되다시피 하며 알량한 능력과 인맥과 편법을 동원하는 것을 똑똑하거나 올바른 처세로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이를 자신 뿐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도 무슨 비법인양 전파하기를 권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전혀 흔들림이 없이 세상의 그 어떤 편리한 방식도 거부하고 곧이 곧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6세기 말은 조선이 건국한 시점에서 2백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름의 평화 시기를 꽤 오래 지속하고 있었지만, 그러는 중에 나태하고 안이한 상태에 빠져 나라밖의 동향을 살피거나 조선의 바람직한 미래를 구상하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버섯처럼 서로 편을 갈라 견제와 대립을 하는 당쟁이 싹트는 등 불안한 조짐이 시작되는 때였다. 나아가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하던 율곡 이이라는 자는 대놓고 당쟁의 명분을 제안하기도 하였으니, 당시의 역사는 불행하게도 매우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결국 16세기의 국제질서는 격동기라 할 만한데, 조선은 그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 이후의 일들은 이미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일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은 서로 편을 갈라 당쟁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나라는 도탄에 빠지는 등 악화일로로 가는 중에 그나마 이순신 장군이 남해안의 한 지역에 불과한 전라 좌수사로서 제 몫을 함으로써 이 나라의 국운을 버티는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이순신 장군은 생애의 마지막 8년을 자신의 성심으로 나라를 구원하는 데에 바쳤다.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제 목숨만을 챙긴 임금과 위태로운 국가위기에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위해 애쓸 뿐인 조정의 간신배들 사이에서 이순신 장군은 외롭고도 눈물겹게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하느라 모든 것을 바쳤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는 이골이 나서 기고만장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절대 맞서 싸워서는 안 되는 조선의 최고 장수로, 반드시 제거해야만 조선을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수로 적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적들을 요리하고 막아내거나 위협을 가하며 백전 백승을 이뤄내신 전쟁의 신으로서 조선을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살려 내었다.

 이미 역사는 4백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으나 그 누구 할 것 없이 이순신 장군의 충과 효, 이 분의 리더십과 희생을 고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다. 나라와 민족의 자긍심이요, 눈물겨운 위인이신 이순신 장군의 생애는 돌아보거나 살필수록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이분이 지킨 삶의 원칙들이 너무도 기본적이고 간편하여 놀랍기도 하다.

 현재에 우리는 그 무엇에라도 실망, 불평, 나아가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크고 작든 스스로의 원칙이나 소신에 의하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의 것에 눈길을 돌리며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에 의존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너무도 자연스럽다. 우리의 위인이 버젓이 광화문광장에 버티시며, 우리를 지키고 있다 해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흔들리고 불안해하며 자신에 기대는 일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의 시작이 자신에 있고, 나는 나의 뜻에 의하여 나의 길을 갈 뿐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에 대한 생각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혼란스럽게 내 문제에 흔들림이 많은 중에도 나라 안팎의 걱정에 한눈팔며 지내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쉬운 기본 원칙과 소신 지키기에는 매우 관대하며 관심을 기울이기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일에, 자신이 지킬 원칙과 소신을 정하고 이를 따르는 일에 다시 눈길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강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