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의 철학자 , 거리의 철학자 에릭 호퍼를 소개합니다. >

에릭 호퍼(Eric Hoffer, 1902 ~ 1983)

'길 위의 철학자' 또는 '부둣가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릭 호퍼(1902~1983)의 삶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삶이 과연 어떠했길래 길 위의 철학자라 불리게 되었을까요? 나는 이런 철학자를 디오게네스 이후로 본적이 없습니다. 빈자의 철학, 가난의 철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에릭 호퍼는 정말 [간절함]과 [생명력]을 갖게 합니다. 그의 삶은 진정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힘을 줍니다.

나는 지금껏 부유하고 가문이 좋은 철학자 사상가들만 보았습니다. 그중에도 온갖 고생을 하며, 고난을 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교수를 하였고,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고, 책을 많이 팔아서 논문을 잘써서 생활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 사람, 에릭 호퍼는 가장 특이하고 놀라운 사람입니다.

나는 이 사람을 만난 것이 참 행운이고 다행입니다. 그의 일대기속으로 들어가봅니다.

우선 그의 태생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1902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출생이지만 5살 때 어머니 품에 안겨 계단에서 구르면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어 그의 삶은 우리 나이로 환갑이 넘을 때까지 가난과 고된 노동 그리고 독서와 사색, 글쓰기에 대한 열망에 찬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힘든 삶에 지쳐 수중에 남은 돈을 가지고 날씨가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노숙을 하며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보다 돈이 떨어지면 자살을 할 생각으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할 정도로 궁색하고 희망이 없던 그였습니다.

그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면 우선 그 사고의 여파로 그의 어머니는 2년 후에 죽게 되고 에릭 호퍼 그 자신 역시 후유증으로 눈이 멀게 됩니다.

그 후 15세 때 기적적으로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는데 언제 다시 눈이 안 보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영어와 독일어로 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합니다.

1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그의 신변을 정리하고 손에 쥔 돈 300불을 가지고 따뜻한 LA에서 노숙을 하며 또다시 책 읽기에 열중했다고 합니다. 그는 지독한 고독서광이었습니다. 이때 돈이 떨어지면 자살할 생각으로 날씨가 좋은 캘리포니아로 왔다고 한합니다. 이 정도면 가히 독서 집착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 후 버클리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1964년까지 여러 막노동(오렌지 행상, 시간제 웨이터, 사금 채취 공, 부두 노동자 등)으로 전전하며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독서하고 사색하며 글을 썼다고 합니다. 나는 수많은 노동자들중에서 이렇게 밥벌이의 고단함속에서도 철학과 사상을 펼쳐간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독학으로 책을 읽고 읽으며, 글을 쓰고 쓰며, 사유하고 사유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1951년 '맹신자들'이라는 첫 책을 시작으로 모두 11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특히 '맹신자들'은 대중운동의 속성을 탐구한 책으로 비단 그가 비판한 유럽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대 대중운동의 허구와 폭력성을 이해하는데 적잖이 도움이 될 만큼 그의 통찰은 날카롭습니다.

이런 그가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오로지 독학으로 그런 사유를 했다는 점이 놀라우며 그러한 날카로운 통찰력 덕분에 그는 1961년 이후 대학 등에서 많은 강의를 하며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는데 1983년 삶을 마감한 그해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자유훈장’이 추서될 정도로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곳 한국에서 보면 아메리칸 드림이 정말 부럽습니다. 노동하는 철학자, 거리의 철학자도 대학강의에 부르고, 백악관에 부르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한국의 대학도, 청와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그의 지난한 삶 속에서도 언제 눈이 다시 안 보일지 모른다는 간절함에 읽고 또 읽으며 사색하고 글을 쓰는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아련한 동정의 마음도 깃듭니다.

왠지 모른 아련한 동정의 마음이 드는 생전의 에릭 호퍼의 라이프 스토리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가 삶의 고됨에 무릎 꿇고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고자 했던 부분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고된 삶 속에서도 언제 눈이 안 보이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단명한 가족력에 40살 이전에 죽고 말 것이라는 체념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적 호기심과 그것들에 대한 열정은 나에게 늘 묻습니다.

'나도 그처럼 간절함에 무언가를 미친 듯이 한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단 한 번도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 안의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나는 간절함이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아니 간절함이 내속에서 빠져 나갔습니다. 간절한 꿈, 간절한 열망이 빠져나가고, 그저 현실의 먹고 사는 문제에만 급급하였습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조차 일상의 무료함을 달랜다는 소모적 생각으로 접근하는 우리 대다수에게 또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에 기생한 절박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요?

그런 마음으로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물론 범죄 같은 행위는 제외)을 한다면 이처럼 독학으로 큰 지성을 이루었듯이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

독학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지만, 이제는 독학이 중요합니다. 평생학습, 평생교육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도 독학하면서, 사색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수립해 나가야 합니다.

너무나 멀쩡한 몸과 마음을 가졌지만 간절함이 결여된 나의 일상에 대해 반성을 해봅니다. 나의 이 일상이 그처럼 한순간 한순간이 간절해지기를 소원해 봅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의 말대로, "일상의 간절함 !! 은 곧 최고의 하루 하루를 만들어 갑니다."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대로, "오늘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하루다. 이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보내라"

그가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녹슬어 죽느니 닳아서 죽자' 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저 편하게 지내다 가고 싶어합니다.
여유가 생기면 산으로 들로 돌아다닙니다.  골프를 치고, 건강에 좋다는 것은 다 하고 싶어합니다. 대학교수들도 은퇴를 하면 책을 보는 것보다 그저 여행을 다니고 술과 차나 마시면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으로 소일을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에릭 호퍼처럼 나이가 들어도 사색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이덕무 선생님처럼 [전서치 - 책에 미친 사람] 가 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성은 더 빛나는 법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게 멋지게 사는 것입니다.

그의 일대기중에 하나를 여기에 남깁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내용중에 하나입니다. 나름대로 편집한 글이나 잘 읽어보십시오. 여기까지 읽었다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길다고 끊어 읽지 마시고 다 읽어 보십시오. )

노동자 출신의 작가 호퍼는 한때 실업자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침마다 LA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직업소개소에 나가 일자리를 구해보았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무려 500여명이라 대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따금 어떤 이들이 나타나, '잔디 깍을 사람이요' '이삿짐을 운반할 사람이요' 라고 솔소리치고는 그곳에 모인 500여명 가운데 한두명만 뽑아갑니다.

에릭 호퍼는 책을 읽다 말고 속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저들은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무슨 기준으로 일꾼들을 뽑아가는 것일까? 그걸 안다면 일자리를 얻기가 한결 쉬울텐데...."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아, 내가 정말 일자리를 구하는 게 다급한 사람처럼 보이면 뽑히지 않을 거야.
오히려 행복하게 보이려고 하고 일자리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그는 역설적인 태도로 행복하고 포근한 표정으로 앉았습니다. 말끔한 복장에 웃음을 띠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곳엔 그날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윽고 한 사내가 들어와 일감을 이야기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앉아 있는 에릭 호퍼를 가르키며 소리쳤습니다.

"거기, 가운데 웃고 있는 사람!"

그날 이후로 호퍼는 매일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호퍼의 철학이 있는 삶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퍼를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진정한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은 노동으로 양념한 만족속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하고 철학하며, 철학하고 노동합니다. 노동하고 사색하고, 사색하고 노동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합니다.
행복하게 기도를 합니다. 행복하게 사람을 대합니다. 행복하게 말을 합니다.

이창우 지식산책(9) - 이글 퍼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