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픽션은 뉴스보다 날카롭다. 30일 개봉한 영화 '홈'은 사려 깊고 냉철하다. 희망은 낭만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은 빈 도화지를 받아 든 심정이 된다.

축구를 좋아하는 열네 살 소년 준호(이효제)는 사고로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갈 곳이 없어진다. 이부(異父)동생 성호(임태풍)가 친아빠 준석(강원재) 집에 들어가자, 준호는 홀로 빈집에서 지낸다. 준석은 그런 준호에게 "우리 집에 오라"고 부른다. 김종우 감독 데뷔작이다.

제작비 2억5000만원으로 찍어낸 화면은 담담하고 투명하며, 소박하면서도 영롱하다. 아이가 당장 부닥칠 가난과 상처, 외로움을 그릴 때도 영화는 감상에 빠지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재작년 가을 부산 문현동과 황령산, 영락공원 등을 돌며 완성한 장면들은 아랫목에 묻어놓은 밥공기처럼 정갈하고 따뜻하다. 두 아이가 달동네 계단을 총총 오르는 모습이나 분식집 떡볶이를 먹어 치우는 장면이 그렇다. 이상한 건 예쁜 장면을 만날수록 관객 가슴이 돌을 얹은 듯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비관하지도 낙관하지도 않는다. 어른들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문제는 아무도 준호가 행복해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법과 제도, 시스템을 갖춘 사회에도 곳곳에 구멍이 있고, 어떤 아이들은 그 구멍에서 쉽게 나가지 못한다. 영화는 그래서 아름답고도 불손하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처럼 호들갑 떨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봐 달라'고 말을 건다.

아역 배우 이효제를 평이하 게 칭찬할 수 없다. 이 어린 배우는 말줄임표를 대사처럼 쓸 줄 알고, 눈빛을 팔다리처럼 사용한다. 관객은 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묘한지 새삼 확인한다. 아이는 환히 웃을 때나 조용히 말을 삼킬 때, 세상을 다 아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할 때도 끝내 어른을 울리고 마는 존재다. 눈물이 너무 많은 사람, 아이 키우는 부모는 허투루 볼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31/20180531002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