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최근에 한 연예인의 불안장애로 인한 갑작스런 방송활동 중단으로 이 질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불안장애는 범불안장애, 특정공포증, 광장공포증, 사회불안장애, 공황장애, 분리불안장애 등을 총칭하는 명칭인데, 강박 및 관련장애, 외상 및 스트레스장애 등과도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모든 다양한 증상들의 배후에는 불안이라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가로 놓여 있는데, 사실 불안은 인간실존에 불가피한 심리현상이며, 많은 경우 현실적응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즉, 불안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내일을 계획하고, 필요한 준비를 함으로써 현실에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회사에서 어떤 상품을 생산한다고 할 때, 과연 기획한 대로 제품이 잘 만들어질지, 그리고 소비자들의 반응이 예상대로 좋을지 등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면 제대로 된 상품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 이상으로 지나치게 심한 불안이 있으면 역효과가 나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불안장애의 대표적인 예로는 매사에 지나치게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범불안장애,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을 지나치게 무서워해 회피하는 특정공포증, 사람들과 서로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회불안장애, 갑자기 밀려드는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는 공황장애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증상은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결코 그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불안장애의 현황

세계보건기구가 2004년 전 세계 14개국을 대상으로 세계정신건강 역학연구를 한 자료를 보면, 각 나라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평균치를 보면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31.2% (남자 25.4% 여자 36.4%)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도보건복지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이 8.7% (남자 5.3% 여자 12%)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는 2006년에 비해 26.1% 증가한 수치이다.

하지만 이는 세계평균치보다는 상당히 낮게 나온 수치인데, 그 원인으로 우선 우리나라 역학조사의 부정확성을 들 수 있으며,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불안을 직접 다루지 못 하고 알콜중독이나 니코틴중독, 약물중독, 도박중독, 인터넷중독, SNS중독 등 각종 중독행동으로 변형시켜서 드러냄으로써 불안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과도 상관있는 것 같다.

한편, 다른 정신질환들도 그렇지만 불안장애는 특히 나라마다 시기별로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유병률이 갑자기 증가하거나 감소하기도 한다. 예컨대, 2001년도 미국에서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곳 주민들의 약 20%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었다. 이는 사건발생 이전의 평생유병률 8.7%에 비해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1~2년 사이에 세월호사건과 더불어 메르스 감염사태, 날로 악화되는 국제무역수지, 그로 인한 극심한 청년취업 및 실업난, 정치적 불안정 등으로 인해 아직 공식적으로 역학조사가 발표된 것은 없지만 아마도 불안장애와 우울장애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불안장애의 원인

앞서도 언급했지만 불안은 그 자체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적절한 수준에서는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현상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과할 경우에는 여러 가지로 많은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며 현실적응을 방해한다. 이러한 불안장애의 발생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에는 사회 및 환경적 원인, 유전적 원인, 생화학적 원인, 심리적 원인, 학습의 영향 등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어느 것도 단독으로는 불안장애를 완전히 다 설명하지는 못 한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 이론으로 불안장애를 모두 설명하려 들기 보다는 서로 다른 이론들이 불안장애의 각각 다른 측면을 좀 더 잘 조명해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사고로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혹은 사귀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일을 겪었을 경우,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서 그 사람의 심리상태는 크게 달라진다.

이런 일을 겪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아침에 일어나면 편한 마음으로 직장에 나가 일하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감이 확 떨어지면서 매사에 불안해질 수도 있고, 혹은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지면서 집밖을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 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쉽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많은 연구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전자의 경우에 비해 유전적인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전자가 정확히 서로 일치하는 일란성 쌍둥이들조차도 스트레스 사건에 대한 반응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다시 유전자가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해준다. 즉,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개인이 선택한 행동과 경험에 따라 심리장애가 생길 수도 있고, 안 생길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처럼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사람들은 부적응적인 사람들과 달리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똑 같은 외상을 겪고도 상대적으로 더 쉽게 회복하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들이 선택하는 행동은 어떤 점이 특징적일까? 만일 이런 것들을 좀 더 자세히 밝혀낼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처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역경에 좀 더 잘 대처함으로써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안장애의 심리치료

우리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불안장애에 대한 대표적인 심리치료 분야 중 하나인 인지행동치료에서는 불안장애를 특정한 종류의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증상으로 설명한다. 즉, 비합리적인 생각이나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생각, 왜곡되거나 과장된 생각, 완벽주의적 사고, 흑백논리적 사고, 역기능적 신념 등이 불안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불합리한 생각들을 찾아내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바꿔주는 것이 치료적 개입이 된다.

불안장애환자들은 이러한 비합리적이고 역기능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따라서 치료자의 임무는 환자들의 이런 생각들을 찾아내어, 그 불합리성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일깨워줘 줌으로써 합리적인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된다. 가령, 걱정사고 기록지 작성, 대안적 사고 찾기, 노출치료, 긴장이완법, 복식호흡법 등을 사용하여 불합리한 생각의 내용을 수정하는 전략을 쓴다. 인지행동치료는 또한 최근 10여년 사이에 위빠사나 명상법(vipassanā, 불교 명상법)을 혼합하여 불합리한 생각과 환자 자신을 분리하는 연습을 치료에 응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또다른 효과적인 심리치료 방법인 게슈탈트치료(실존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심리치료 요법)에서는 불안장애를 ‘현실접촉 장애’로 규정한다. 즉,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접촉하면(받아들이면) 아무리 고통스런 경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해결되어 사라지면서 생생한 삶을 회복할 수 있는데, 환자들은 그러한 고통이 두려워 [생각 속으로 도망감으로써] 현실접촉을 회피한다. 따라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미해결과제로 남아 나중에 더 큰 문제로 나타나는 것이 불안장애라고 본다.

게슈탈트치료에서는 불안장애의 핵심은 현실[또는 현재]로 직접 뛰어들어 부딪치는 대신, [생각을 통하여] 머릿속에서 미래를 그려봄으로써 위험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불안을 없애고자 하는 노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머릿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자체가 현실은 아니다. 생각은 우리의 여행길을 안내해주는 지도와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여행을 대체해주지는 않는다. 더욱이 잘못된 지도인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불안장애환자들이 그런 방향으로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받았던 경험들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생각[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최소한 세 가지 이유에서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첫째 삶은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즉, 미래는 경험하기 이전에는 알 수 없다. 따라서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그들의 생각(시뮬레이션)은 자신의 트라우마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현실의 다양한 부분들을 고려하지 못 하고, 부정적 측면만 과도하게 부각시킴으로써 현실을 왜곡한다.
셋째, 미래를 ‘머릿속에서’ 예측하고 ‘머릿속에서’ 해결하려는 행동(시뮬레이션)자체가 미래를 비실존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즉, 매순간 미래를 맞이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함으로서 삶을 스스로 창조해나가야 할 시간에 불안장애 환자들은 시뮬레이션에 몰두함으로써 ‘실존적’ 삶을 회피해버린다는 것이다.

미래는 살아있는 시간이며, 끊임없이 현재로 흘러들어오면서 피어나는 실존이다. 삶이란 끊임없이 이러한 미래를 허용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는 까마득한 훗날이 아니다. 매순간 현재로 도착하는, ‘흘러들어오는(zukunft)’ 살아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삶의 기쁨과 환희 못지않게 온갖 갈등과 고통도 당연히 포함한다. 그런 것들이 결여된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면 그것이 무슨 삶이겠는가?

삶의 본질은 매순간 현재와 연결되면서 열려오는 그리고 도착하는 미래의 ‘시간성(temporality)’이 그 본질인데, 미래를 과거에 의해 예측 가능한 종속변수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미래의 시간성을 박탈해버리는 것이 불안장애의 핵심이다. 이러한 불안장애는 그것이 우리에게 고통스런 증상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삶이 아닌 것으로 즉, 비실존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불안장애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삶의 시간성을 부정하고 외면하려는 잘못 된 시도에서 비롯되는 비실존적 고통이다. 이는 삶에서 불가피한 자연적이고, 그 자체로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실존적 고통과는 구별되며,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실존적 고통을 회피하려고 들 때, 비 실존적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 불안장애를 앓게 된다.

게슈탈트치료에서는 이처럼 불안장애를 환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비 실존적이며, 성취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과도하게 노력함으로써 발생하는 인위적 장애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치료는 그들의 이러한 무의식적 동기와 그로 인한 비 실존적 행동들을 알아차리고, 매순간 [현재와 연결되는] 열린 미래를 맞이하고 접촉하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된다.

나가며

삶의 목적은 위험회피나 안전추구가 아니다. 삶의 목적은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온갖 불확실성과 고통마저도 포함하는 진정한, 실존적인 시간성을 ‘살아내는(live through)’ 것이다.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성장하며, 우리의 한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초월하고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즉, 자기실현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실현은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루질 수 없다. 미래와 현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매 순간 나의 선택에 영향을 받으면서 새롭게 창조된다. 우리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분리된 외딴 섬들이 아니다. 반대로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손잡고 함께 웃으며, 함께 슬퍼하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현실은 과거와 현재, 미래, 우리와 다른 존재들이 서로 연결된 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매 순간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된다. 접촉(현실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며, 새롭게 창조한다.

가상적이고 허구적인 안전을 추구하면서 [고정된] 생각의 세계로 도피할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며, 숨 쉴 산소를 공급받지 못 한다. 자유는 아무런 움직임과 불안이 없는 고정된 진공상태, 어떤 무게감도 느끼지 않는 무중력상태가 아니다. 자유는 기쁨과 슬픔, 두려움, 분노, 우울을 모두 포함하며, 고요할 때도 있지만 풍랑이 몰아칠 때도 있는 살아있는 흐름 속에 있다. 자유는 혼자만의 고요한 평정심 상태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노래하는 만남 속에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 계층 간의 불평등과 소외감, 개인적인 불안과 우울감 등은 모두 참으로 어렵고 힘든 문제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혹은 어려움들]을 회피하거나 도피함으로써는 진정한 해결과 자유를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혼란과 불안 속에 때로는 삶의 실패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앞날이 몹시 불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과 불안에 휩싸여 그것들에 먹히거나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삶은 승리와 패배로 정의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성공과 실패 혹은 맞고 틀리다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어떤 삶이 가치가 있고, 어떤 삶은 무가치하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삶은 그 자체로서 소중하고 귀하다. 삶은 살아내는 과정 그 자체가 의미다. 거기서 무슨 의미를 발견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불안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불편한 문제로만 보지 말자.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에 의하면 불안은 오히려 세상적인 기준과 일상에 매몰된 채 비본질적 삶에 빠져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자위하면서] 허우적대는 우리 존재를 진정한 실존으로 돌아오라고 불러 깨우는 참자아의 목소리이다.

(김정규 교수)

現)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現) 국제 게슈탈트저널 편집위원
前) 한국게슈탈트상담심리학회 치료학회장
前) 한국 임상심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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