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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남편보다 모든 면에서 앞섰다. 돈도 더 잘 벌었고, 주변에서 인기도 많았다. 친구도 많고 친정식구들도 늘 곁에 있었다. 그에 비해 남편은 변변치 못한 수입에 성격도 외곬이어서 주변에 친한 사람도 별로 없었다. 부인은 이런 남편이 자기 열등감의 일부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토록 별 볼 일 없는 남편이 가출한 것은 6개월 전쯤 일이다. 부인은 남편의 부재가 이토록 강력하게 자신을 무너뜨릴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떠나면 잘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작 남편의 가출 뒤에 무너지는 부인을 보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찬찬히 찾아보기로 했다.
부인은 어린 시절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후원자 역할을 해주신 듯했다. 남편이 가장으로, 자녀들의 아버지로 부족할 때 친정아버지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그러니까 친정아버지는 남편이 제구실을 못할 때 의지했던 보조바퀴였다. 그 덕분에 부인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부작용이라면 본바퀴인 남편이 끝까지 자신의 기능을 발휘할 필요성을 만들지 못하게 한 점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니 아버지 이야기는 많이 나오는데 어머니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떤 분이고 관계는 어떠했는지 물어보니, 어머니는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늘 키우기 힘든 딸이라는 책망만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반면에 어머니의 사랑은 받지 못했던 것이다. 특이하게도 부인은 어머니와의 불편한 관계를 상담을 통해 처음으로 인식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가 늘 어긋나기만 했는데 이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억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 결핍을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보조바퀴를 통해 외면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잘 달리는 자전거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조바퀴를 사용하는 생존방식은 부인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어김없이 활용됐다. 남편이 밉거나 불만스러울 때는 아버지라는 보조바퀴에 의지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남편의 사랑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마치 시위하듯 보여 주었다. 그러나 부인이 내심 원했던 것은 남편의 사랑이었고, 또 그 이전에는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정작 받고 싶은 사랑을 포기한 채 다른 사람의 대체 사랑으로 버텨온 것은 그리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니다.
이 같은 문제를 이해하고 나니 실천 과제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와 대화하고 얼마나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는지를 표현하는 것과 남편에게 다가가는 일이었다. 다행히 남편이란 존재는 친정아버지나 친구들로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했기에 부인은 남편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었다.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