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은 ‘중2병’이었을까?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이 가장 큰 재앙에 속했다. 그러나 나라님도 못 고치고, 전쟁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지난 주 새 학년으로 진급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을 둔 학부모와 교사들이다.

북한의 김정은도 '중2'가 무서워 남침을 못 하고, 도둑도 '중2 있음'이라는 문패를 보면 도망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중2는 그 누구도 다루기 힘든 럭비공과 같은 존재다.

요즘 중학생의 자아형성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불만, 일탈행위 등을 총칭하는 말로 ‘중2병’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또래 청소년들의 심리적 상태를 일컫는 용어다. 일본에서 유래해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또 엄마들의 사춘기보다 다이내믹하고 언니·오빠들의 청소년기보다 훨씬 혼란스런 중학교 시절을 보내는 요즘 아이들을 두고 ‘호모 중딩쿠스’라고도 한다. 인간의 행동방식으론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전혀 새로운 인류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신경 써주면 간섭, 그냥 두면 무관심, 엄마의 잔소리에 자기만의 논리로 반박하거나 대드는 10대 자녀를 보면 비단 청소년의 문제라고 보기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제법 크다.

고3만큼 고달픈 중2, 선생님도 부모님도 중2 공포증

시골 길을 따라 학교를 오가면서 친구들과 헤르만 헤세와 루이제 린저를 얘기하고, 비틀스나 대학가요제 노래에 열광했던 우리의 사춘기 모습과는 달리 삭막한 아스팔트 도시에서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중2가 되면 눈빛부터 달라진다’는 건 기본이다. 중2는 교사가 피하고 싶은 학년 1위라는 불명예(?)기록을 가지고 있다. 일선 교사들도 “중2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학년”이라고 입을 모은다. 말로 해도 안 되고 혼을 내도 안 되는 ‘이 망할×의 중2’라는 한탄부터 ‘전생의 업보’라는 자조까지 반응도 다양하다.

중2 담임의 상당수는 기간제 교사가 감당하고 있다. 폭력이 나쁘다는 의식도 없고 감정 조절 능력도 부족해 사고가 자주 나는 통에 많은 교사가 담임 맡기를 피한 까닭이다.

중1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때라 혼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잡히고, 중3은 해도 될 일과 안 될 일을 구분할 줄 안다고 한다. 반면 중2는 학교에 적응도 했고, 중학교 기간은 의무교육이라 퇴학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더 막무가내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수능 등 입시 부담이 큰 고교생이나, 신체적으로 아직 성인에 미치지 못하는 초등학생과 달리 중학생들은 신체 발달이 왕성해 안하무인격의 폭력성이 극대화되고 선생님과 부모님을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쉽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의 비밀은 뇌의 메커니즘이 변화!

사춘기 특유의 감수성과 상상력, 반항심과 허세가 최고조에 이르는 중2병은 중학생들이 한 번씩 앓고 지나가는 홍역과도 같다. 제임스 딘처럼 오토바이를 멋지게 타며 ‘이유 없는 반항’을 하고 싶고, 바바리코트 깃을 휘날리는 주윤발처럼 영웅놀이도 하고 싶은 게 사춘기 청소년들이다.

중2병은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 증가, 무기력, 비행, 다양한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인터넷의 발달도 중2병을 심화시켰다. 청소년들이 인터넷게임이나 스마트폰 등에 온종일 노출되면서 성인들의 나쁜 문화를 모방하는 게 쉬워졌다. 여기에 학업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면서 무기력증이나 우울증, 폭력적 성향이나 극단적 선택이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들의 극심해진 스트레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학교폭력 피해율이 가장 높은 것도 중2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실제로 중2병 청소년들의 자살과 학교폭력, 가출 등 적잖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지나친 경쟁 때문에 학업 부담이 고교에서 중학교로 내려오면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중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젠 공부 잘하는 학생도 중2병에 걸리고, 차분하던 학생들도 학교에서 나름의 오락거리나 위로를 찾기 위해 왕따나 폭력에 동참하기도 한다.

경쟁과 입시지옥에서 탈출구가 없는 아이들이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되는 게 요즘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나, 꽉 막힌 세상에서 친구에 대한 폭력으로 치기를 분출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모두 우리가 품어야 할 소중한 자녀다.

때론 느린 것, 작은 것이 아름답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청소년에게 자유를 주지 않으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비겁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미 많은 청소년의 사춘기가 어른들의 조급함으로 왜곡되고 있다. 시대와 어른을 닮아 청소년들도 점점 더 비정하고, 거칠어졌다.

갈 곳 없는 아이들과 갈 곳을 일러주지 못한 어른들의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소통’에 대하여 그 많은 사람이 외쳐보지만, 정작 우리와 가장 가깝게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소통의 골은 깊고 어두워 보인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단 시간에, 가장 짧은 경로로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총알의 질서’와 경쟁과 서열, 성적이라는 ‘죽음의 링’의 핫코너에 몰아넣고, 질책만 했을 뿐, 여유로운 기다림과 신뢰와 믿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가르치질 못했다. 오늘날 중2병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된 것에는 삶에서 기준이나 표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뚜렷한 방향의 제시 없이 한쪽으로만 몰아세울 수는 없다. 아이들을 끝없는 경쟁사회로 내몰면서 아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에 귀 기울여주지 않은 어른들에게 잘못이 있지 않을까.

중2병을 구제할 단기적 해법과 악순환을 끊을 장기적 해법이 모두 필요하다. 단기적 해법은 10대의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중2는 자기들도 힘들고 당황해 하고 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너무 차가 튀어 나가고, 브레이크를 밟아도 제대로 멈추지 않고 좌충우돌하고 있다. 적절한 조언과 강하고 단호한 억제적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부모부터 이를 지켜나가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인생의 내비게이션과 삶이 기준에 대한 항체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에는 2만여 개의 직업이 있지만, 자녀에게 일러주는 직업은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 의사, 변호사 등 20여 개도 안 된다.

지금 사회를 보면 쓸데없는 경쟁이 너무 많다. 자신이 어떤 그룹에 속하는지도 모르면서 남들이 속도 내어 달려가니까 나도 달려간다. 경쟁할 때는 경쟁해야 하지만 모두를 경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착각이 낳은 큰 폐단이 선행학습이다. 아이들이 성장통을 이겨내기 위한 준비의 시간을 줘야 한다.

간디는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과 재능 그리고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감미로운 향기를 지닌 ‘꽃’을 누구나 가지고 태어났다. 그 ‘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의 총알이 아니라, 나비처럼 날아야 한다.

나비는 어떻게 날아가나요? 나비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고, 방향성이 없는 것 같지만 향기를 따라 정확하게 원하는 꽃을 찾아가 앉는다. 나비가 가는 길은 혼돈의 길이 아니라 어김없이 자기가 원하는 꽃에 반드시 이르는 창조적인 길이다. 이것이 ‘나비의 질서’다.

Jackson(1968)이 교육사태의 전개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교육이 전개되어가는 행로는 총알이 날아가는 행로 보다 나비가 날아가는 행로에 더 가깝다”라고 한 말은 교육의 질서가 갖는 이러한 특징을 매우 간명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2학생을 자녀로 제자로 두신 학부모님 그리고 선생님 여러분!
교육의 본질은 이러한 ‘나비의 질서’와 닮아 있습니다. 교육은 끝없는 ‘기다림과 신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