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식물, 인간은 신체 안에 생체시계를 갖고 있다. 생물체 내의 고유한 리듬에 따라서 수면패턴이나 음식섭취 주기, 산란 시기 등이 일정하게 정해지는 메커니즘이다. 생체시계의 리듬은 동물마다 다른데 이 리듬에 따라 박쥐는 밤에 기상해 낮에 잠이 들고, 나무늘보는 일주일에 129시간 정도 자고, 개구리는 깊은 겨울잠을 자다 봄이 되면 깨어난다.

그런데 인간은 생체시계 외에 또 하나의 시계를 갖고 있는 듯하다. 바로 '기분시계'이다. 동물이 저마다 다른 리듬의 생체시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이 기분시계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른 리듬,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누군가의 화가 가라앉는 데 걸리는 시간, 오해가 풀리는 데 걸리는 시간, 감사나 사과를 표하는 데 걸리는 시간, 우울함이 기쁨으로 바뀌거나 슬픔을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른 사람보다 더 느릴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얼마 전, 친구가 내게 어떤 잘못을 했고, 나는 사과를 하지 않는 친구에게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전화를 걸어 화를 낼까 하다가 겨우 참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사과의 전화가 왔다. 듣고 보니 그도 계속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나에게 사과를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내가 기대한 시간보다 약간 늦어졌을 뿐이었다. 내가 그의 기분시계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화를 냈다면 관계는 더 틀어졌을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간혹 왜 저 사람은 예의도 없이 사과나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을까, 답답하게 오해를 빨리 풀지 못할까, 계속 화만 내고 있을까,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섣불리 누군가를 탓하거나 그 사람에게 화내기 전에, 답답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결론 내리기 전에, 잠시 관심을 돌려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빠르면 몇 분 후, 몇 시간 후, 혹은 몇 달 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다는 것을, 단지 그 사람의 기분시계가 나와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조선일보 2014. 2. 3일자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