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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은옥 작성일 2023-01-30
제목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조회수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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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크납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에서 우선 불확실한 날들을 이행대에 비유한다. 이행 대란 숲이 들을 부르고 들이 숲에게 대답을 하는 곳이란다. 숲과 둘이 만나는 지점으로 생태학적으로 긴장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숲과 들의 동식물이 서로 공존하는 곳이다.

 

 

이 이행대를 시간개념으로 말하자면 과도기라 말할 수 있다. 기존의 것에서 낯선 것으로의 이행을 뜻한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낯선 감정은 불안과 공포로 가득하다. 이때 유연함이 그 어느 때보다 생명이다. 유연함이란 낯선 것에 대한 일차적인 감정을 유보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태도라 말할 수 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상황을 관조하고 여유 있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이전과 이후가 만나 다양한 상상과 혁신이 오갈 수 있다.

 

 

인간은 어쩌면 과도기적 존재가 아닐까.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이 땅에 태어나 저세상으로 가는 날까지 하이데거의 말처럼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신화는 우리의 삶을 이끄는 동기이자 동력이다. 창조된 것이든 진화된 것이든 그 어떤 방식으로든 시작에 대한 믿음은 우리 생애 기저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낙원이든 자연이든 제3의 피안이든 죽음 이후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윤리적 삶으로 이끈다. 우주는 카오스의 어둠 속에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생성과 소멸은 생과 사, 낮과 밤, 불과 물처럼 극과 극의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그사이에 존재하는 과도기적 인생을 단순히 산 것이다. 죽은 그것이 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과정이요, 변화다. 변화는 순간마다 새로 태어남이요, 또 순간마다 죽음이다. 이를테면 생성과 소멸의 무한반복이다. 그러다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사망선고가 떨어질 때 비로소 불확실한 날도 마감한다.

 

 

인간의 실존은 공교롭게도 누구에게나 나(자신)가 있기 이전과 이후. 우리는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습성이 있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순간이 찾아와도 그것을 부정하며 억압으로 작용한다. 갑자기 찾아든 가족의 부재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알지만 일상에선 좀처럼 떠올리긴 어렵다. 우리는 애도의 시간 속에서 절망한다. 하지만 이후의 삶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아픔을 동반한 깊은 사색의 과정이 우리를 성장케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다. 퍼즐 같은 인생을 맞춰 보지만 조각들 하나하나는 비슷해 보여 어지럽기만 하다. 우리는 혼란과 변화의 틈에서 손을 뻗어 무언가라도 잡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때 우리가 잡아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닌 비 물질이다. 물질은 감각적인 것에 매몰된 것이다. 형체가 있는 것은 헛된 욕망과 거짓을 양산할 뿐이다.

 

나탈리 크납은 겝스의 역사 인식을 소개하며 역사적 단계를 변이로 이해한다. 역사를 전체적으로 원초적 단계-주술적 단계-신화적 단계-정신적 단계로 나눈다. 이 단계적 변화를 점진적인 발전이 아닌 도약이라고 언급한다. 더 나아가 인간 개개인의 발달과정을 이 역사 인식에 비춰 적용한다. 즉 생애주기에서 유아-아동-청소년-성인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과정 사이를 변이, 즉 도약이라고 덧붙인다. 시기적으로 도약이 이뤄지는 과도기에 발생되는 잉여 에너지의 흐름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 그 흐름을 통제하려고 들면 돌연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통제는 예측 가능한 상황일 때나 가능하다. 변이의 과정은 불확실한 것이다.

 

 

불확실한 날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 시간들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작동될 수 있는 여지가 아직 남았음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의지가 성숙할 기회다.

 

 

시간의 깊은 차원은 시곗바늘로는 가늠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는 능력은 깊은 차원의 시간을 보내게 한다.”

 

 

우리는 시대적인 이행대를 지나가고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불획실한 날들을 성장의 기회로 삼기를 희망한다.

 

 

백성현 /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동구지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