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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광선 작성일 2022-11-12
제목 까치밥을 남겨두는 마음 조회수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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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감을 땄다. 우리 절에는 감나무가 네 그루 있는데, 그중 두 그루만 제법 많은 감이 열렸다. 더러는 나무 위에서 홍시가 된 것도 있었는데, 홍시 중에는 까치가 쪼아 먹다 남은 것도 있었다. 까치밥이란 말은 들었지만 직접 새들이 쪼아 먹은 흔적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까치들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두었구나! 한참을 따다 보니 까치가 쪼아 먹다 남은 홍시들과 꼭대기 쪽 감 몇 개만 남았다. 당연히 그것들은 남겨두었다. 우리 조상들이 까치를 위해 감을 남겨놓을 만큼 넉넉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의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인사말은 "진지 자셨습니까?"였는데, 밥을 드셨느냐는 뜻이었다. 밥은 먹었느냐는 인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배를 곯았음을 말해준다. 넉넉한 살림살이가 아니었음에도 우리 조상들은 말 못하는 미물들도 챙길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1960년 '대지'의 작가 펄 벅(1892~1973)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늦은 가을 감나무 꼭대기에 달려 있는 감을 보고 작가가 물었다. "저 높은 곳의 감들은 따기 힘들어서 남긴 것인가요?" "아닙니다. 저것들은 새들을 위해 남겨둔 것으로 '까치밥'이라 부릅니다." 이에 작가는 "어느 유적지나 왕릉보다 더 감동적인 이 현장을 목격한 것만으로 나는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감탄했다. 이후 펄 벅은 한국을 사랑하는 대표적인 외국인이 되었다.

송수권은 긴 장대로 까치밥까지 따는 조카아이들을 나무라며 '까치밥'이라는 시를 썼다. 시인이 보기에 까치밥은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따뜻한 등불'이었다. 세상이 어지러워 굶주려야 할 때에도 날짐승들을 위해서 몇 개의 감을 남겨놓는 것이 우리 민족의 넉넉한 마음이었거늘, 시인은 조상들의 여유와 자비를 계승하지 못하는 후손들이 못내 안타까웠다.

까치밥 말고도 우리 조상들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풍습은 많다. 송수권 시인은 할아버지가 길손들이 오가는 사랑방 말코지에 짚신 몇 개를 걸어놓았던 것을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나그네가 하룻밤 묵고 가면서 짚신을 갈아 신고 갈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옛날에는 들이나 산에서 밥을 먹거나 음식을 먹어야 할 경우 음식을 조금씩 떼어서 '고수레' 하며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의 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이 또한 산에 사는 짐승이나 들에 사는 짐승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승가에도 비슷한 전통이 있다. 승가에서 발우공양할 때면 1인당 밥알을 세 알에서 일곱 알 정도 떼어서 모은다. 이 밥알들은 귀신들을 위한 음식이다. 또 식사하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청수에 한 번씩 담그게 되는데, 그 청수는 아귀의 음식이 된다. 아귀는 목구멍이 바늘구멍만 해서 우리에게 보이는 음식은 목구멍에 걸리게 되므로 아귀에게 제공할 청수에는 보이는 음식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맑은 청수만 퇴수통에 따르고 가라앉은 찌꺼기는 스스로 먹어야 한다. 이 모두가 귀신과 아귀 등 보이지 않는 존재들까지 생각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우리가 얻는 재물은 온전히 우리 것일 수 없다. 어떤 재물에도 수많은 생명체를 비롯한 우주 만물의 노고와 은혜가 담겨 있다. 우리 집 뜰에서 자란 감나무라 해도 그 감을 위해 햇빛과 공기와 물, 수많은 미생물, 벌레들, 벌과 나비와 새들의 기여가 적지 않다.

내가 정당하게 번 것이라 해서 그것을 오직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만 쓴다면, 이는 우리 조상들의 넉넉한 마음을 계승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소득을 거두었건 '까치밥'을 남겨두는 여유와 자비심을 가져야겠다.

[동명 스님 광명 금강정사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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