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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용규 작성일 2021-08-22
제목 별똥 떨이진 데  - 윤동주 조회수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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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 떨어진 데

- 윤 동 주

 

 

밤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농회색(濃灰色)으로 캄캄하나 별들만은 또렷또렷 빛난다. 침침한 어둠뿐만 아니라 오삭오삭 춥다. 이 육중한 기류 가운데 자조(自嘲)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를 나라고 불러두자.

 

나는 이 어둠에서 배태(胚胎)되고 이 어둠에서 생장(生長)하여서 아직도 이 어둠속에 그래도 생존(生存)하나 보다. 이제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 나는 도무지 자유스럽지 못하다. 다만 나는 없는 듯 있는 듯 하루살이처럼 허공에 부유(浮游)하는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

 

이 밤이 나에게 있어 어릴 적처럼 한낱 공포의 장막인 것은 벌써 흘러간 전설이오. 따라서 이 밤이 향락의 도가니라는 이야기도 나의 염원에선 아직 소화시키지 못할 돌덩이다. 오로지 밤은 나의 도전의 호적(好敵)이면 그만이다.

 

이것이 생생한 관염세계에만 머물은다면 애석한 일이다. 어둠속에 깜박깜박 조을며 다닥다닥 나란이한 초가들이 아름다운 시의 화사가(華詞)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벌써 지나간 제너레이션의 이야기요, 오늘에 있어서는 다만 말 못하는 비극의 배경이다.

 

이제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즛내몰아 동켠으로 훠―ㄴ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고 하자. 하나 경망스럽게 그리 반가워할 것은 없다. 보아라 가령 새벽이 왔다 하더래도 이 마을은 그래도 암담하고 나도 그대로 암담하고 하여서 너나 나나 이 가랑지길에서 주저주저 아니치 못할 존재들이 아니냐. ........

 

어디로 가야 하느냐 동()이 어디냐 서(西)가 어디냐 남()이 어디냐 아차! 저 별이 번쩍 흐른다. 별똥 떨어진 데가 내가 갈 곳인가 보다. 하면 별똥아! 꼭 떨어져야 할 곳에 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