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HOME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작성자 길학철 작성일 2021-03-27
제목 편안한 노후 조회수 5958
첨부파일  

 

편안한 노후

 

 

“사람이 생로병사의 고통을 피해갈 수 없듯이 안락하고 편안한 노후도 없다. 노후의 가장 큰 고통은 희망과 능력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래도 늙은이에게는 오랜 삶의 경험과 지혜가 있다. 이것을 아이들의 밝고 활기찬 웃음에 모두 투자하는 노후야말로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편안한 노후

노안()이란 한자를 해석하면 갈대 (노, 로), 기러기 (안)이 된다. 기러기와 갈대가 함께 붙은 한자는 함노(), 즉 ‘갈대를 물다’, 혹은 ‘갈대를 물고 있는 기러기’라는 의미이고, 이는 중국고사에서 ‘난세에 보신책을 강구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기러기와 갈대를 그린 그림은 「노안도()」가 아니라 「노안도()」로 읽고 쓴다. 그 뜻도 ‘몸조심’이 아니라 ‘편안한 노후생활’ 정도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러기와 갈대를 그린 그림을 보고는 도저히 ‘편안한 노후생활’이라는 그림의 뜻을 유추할 수가 없다. 고양이와 참새, 혹은 까치를 그린 그림은 80세 생일을 축하한다는 뜻이고, 연꽃 열매와 해오라기를 그려놓은 그림은 시험에 연달아 합격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그림은 한자와 우리말의 발음을 교묘하게 연결한 문자유희를 통해 뜻을 전달한다. 그림 속의 형상은 생태적 상징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단지 발음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공통성만 있다.

이것은 문자와 글이 우선했던 중국이나 조선사회에서는 ‘시서화()’라는 말처럼 시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은 서, 마지막이 화라는 엄격한 순서가 지켜졌고 바로 그 영향으로 제목에 맞는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우리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림을 읽는다’는 의미는 그림의 조형성이나 완성도 보다는 내용,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뛰어난 그림실력을 가지고 있는 도화서 화원의 재주는 천하다고 여기면서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관념적인 문인화에는 높은 가치를 매기는 선비들도 많았다.

현실적 요구를 수용한 노안도

하지만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다. 땅이 넓고 사람이 많으며 복잡한 세력관계가 존재하는 청나라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조선의 선비사회에서 난세에 복지부동하며 제 몸만 챙기려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선비들은 자신이 속한 당파에 목숨을 걸고 세상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과 정치지형의 차이가 발음만 같지 전혀 다른 뜻의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조선 말기로 오면 엄격하던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양반들을 중심으로 지켜지던 유학적 가치가 일반백성들까지 전파되면서 미술작품의 뜻이나 시(), 문체보다는 그림 자체에 더 집중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문자와 글자를 잘 몰라도 그림 속에 담겨진 의미를 전달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문자를 알고 쓸 수 있었던 양반뿐 아니라 돈 있는 중인이나 상인들이 대거 그림을 구매할 수 있었던 시대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을 가진 중인이나 상인들은 양반문화를 동경하면서도 양반과는 다른 인간의 세속적 욕망이나 현실적 요구에 충실했다.

‘난세에 보신책을 강구한다’는 「노안도」는 ‘편안한 노후생활’이라는 현실적 요구와 부합하면서 동시에 그림만으로도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한 장치들이 결합된다. 그래서 기러기와 갈대의 생태적 상징을 발굴하고 이러한 장치들이 결합하여 누구나 척 보면 알 수 있는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강필주, 노안도/비단에 담채/1917년/국립고궁박물관

강필주, 노안도/비단에 담채/1917년/국립고궁박물관시든 갈대는 늙음을 뜻하고 기러기는 오랜 삶을 살아온 노인을 뜻한다. 동시에 기러기가 먼 길을 날아 따뜻한 남쪽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원래는 난세에 보신책을 강구한다는 뜻의 그림이었지만 조선의 현실과 맞지 않아 편안한 노후의 의미도 변화했다.

겨울 추위를 피해 먼 길을 비행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는 철새의 이미지는 오랜 세월을 힘들게 살아온 늙은이의 인생역정과 비슷하게 연결된다. 또한 갈대밭에 앉아 있거나 쉬고 있는 기러기는 노인이 편안하고 풍요롭게 쉬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이렇게 해서 원래의 뜻은 사라지고 그림 자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그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안도」는 궁궐을 장식하는 그림으로 수용되었다. 궁궐은 늙고 병든 왕만 사는 곳이 아니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자나 왕손들이 실제 주인들이다. 궁궐의 「노안도」는 늙은이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뜻을 넘어서 왕실의 안녕과 평안을 뜻하는 그림으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노후의 편안함은 과연 무얼까?

「노안도」라는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노인들도 결코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늙은이를 위로하는 그림일 뿐이다.

병상에 누워 「노안도」를 바라보는 늙은이는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삶 속에는 젊을 때의 패기와 희망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남는 것은 회한뿐이다.

이것은 현대의 늙은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보험을 들고, 저축한 돈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사는 것이 안락한 노후생활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인들은 병원을 왕래하면서 노인정이나 노인학교 따위에서 주선하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늙은이의 삶은 외롭고 서럽다. 자녀들은 모두 떠나고 늙고 병든 몸에 어려운 경제상황은 늙은이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늙은이들은 예상보다 너무 오래 살고 있고,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버렸다. 젊어서 상상했던 노후세계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은 없다. 병이 들어 골골거리면서 오래 사는 방법은 있다. 이것은 돈과 권력이 있어 좋은 병원을 다닌다고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노안도」라는 그림이나 TV광고에 나오는 모습처럼 이상적인 노후생활은 없다. 사실 어릴 때도, 젊었을 때도, 중년이나 장년의 삶도 고달프긴 마찬가지였다. 흔히 ‘중생한’이라는 말처럼 ‘삶이 곧 고통’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거부할수록 더욱 커진다.

삶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세속의 욕망을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조금 편안해진다. 무엇보다 오랜 삶의 경험과 지혜를 모아 다음 세대의 미래에 투자하고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보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노후일 것이다.

노안도, 심규섭/디지털회화/2012

노안도, 심규섭/디지털회화/2012기러기와 갈대와 보름달이 함께 그려지면 ‘노안락(老安樂)’이라고 화제를 쓴다. 기러기가 노인을 상징한다면 이 그림에서 노인은 여전히 열심히 날고 있다. 안락한 노후는 없다. 그저 삶을 살아갈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편안한 노후 (민화, 2015.09.07., 심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