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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도영 작성일 2021-01-06
제목 실존주의 철학(4) 조회수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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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하이데거가 죽음을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라고 한데 반해, 죽음을 인간실재의 부조리로 규정한다. 이는 죽음의 존재의 완전한 무화’(無化)이며, 나의 가능성의 영역 바깥에 즉 자유의 영역 밖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 은 삶의 전면(全面)을 지배할 수는 없으나 항시 아직은 오지 않은 사건으로 인생의 외부에 잠재하고 있다. 이때 잠재성은 대자(對自)의 사실성, 즉 대자의 존재론적 구조 안에서 잠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종말이라는 점에서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삶의 종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삶의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이 말은 죽음이 삶의 종말이기 때문에 인간이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에 젖어 사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삶의 종결이기 때문에 도리어 삶은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unique)것이라는 의미이다(조주희, 1978).

 

하이데거에 있어서 현존재는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으로서의 죽음을 마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도 죽음의 경험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 있어서는 타인을 통한 죽음의 경험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나의 죽음은 전면적으로 타인의 권한과 책임에 위임되어 있는 것이다. 죽음은 바깥쪽에서부터 우리들에게 다가와서는 삶의 모습에 영향을 미치는, 출생과 다를 바 없는 하나의 부조리이다. 이 부조리는 이미 의 가능성이 아니라 오히려 의 가능성이며, 나의 가능존재의 끊임없는 타유화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주관성의 외적인 하나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의 죽음이 타인의 가능성이라는 말은 타인의 죽음이 나의 가능성이라는 말과도같다. 그러므로 타인의 죽음을 통하여 나의 삶은 생동한다. 삶은 본질적으로 자기비판의 능력을 소유하며, 또 자기 변신의 능력을 소유하며, 이 능력이 삶을 아직 없음으로 정의하게 한다 

즉 삶은 그 자체가 변화 지향적이다. 타자의 죽음은 타자에게는 완결의 의미이지만, 나에게는 지속적인 변화의 양상을 띤다. 죽은 인생은 완전히 폐쇄되어 있다그러나 죽은 인생의 의미는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Sartre, 1990. 손우성, 1990 재인용).

 

이처럼 실존주의 철학은 죽음을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전통적 형이상학의 관점에서처럼 보편적, 객관적 진리 속에 감추어버리거나, 각종 종교에서처럼 원죄의 결과나 심판의 보응으로 치부해 버리거나, 혹은 경험이나 인식이 가능치 않으므로 인생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오히려 죽음을 철학함의 정점에 위치지우며 이로부터 실존의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 사실 죽음만큼 오래된 인간의 경험은 없을 것이다.

 

죽음의 역사는 태어남의 역사와 그 자취를 나란히 하기에 생명의 역사와 연배를 같이 한다. 또한 죽음은 모든 생명을 관통하는 불가피한 사건이기에 존재와 의식의 옷을 입은 자에게 있어 사유의 공간에서 지워버릴수 없는 현 존재의 거울이 되어왔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우리들 실존의 엄연한 한 부분이며 마지막 발달단계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하여 가장 깊고 넓은 의미를 제공해주는 것이 실존주의적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