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존재와 시간』(1972)이라는 저서에서 존재 일반의 의미를 심도 있게 묻고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는 것은 곧 이미 존재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존재 이해 (Seinverst핑ndnis)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다른 모든 존재자로부터 구별되는 존재를 ‘현존재’(Dasein)라고 하며, 이러한 현존재가 관계하고 있는 존재 자신을 ‘실존’(Existenz)이라고 부른다(Heidegger, 1972).

즉 실존은 현존재가 실현해야 할 목표가 된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는 곧 ‘죽음을 향한 존재’이다. 이는 인간이 생물적 존재이므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도 아니며, 모든 보편적 죽음을 강조하는 무미건조한 이해도 아니다.

또한 인간이 일평생 경험하는 수많은 사건들 중의 하나이자 인간의 삶을 마감 짓는 종지부로서의 죽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을 향한 존재’를 통하여 하이데거가 의도하는 바는 죽음의 필연성과 아울러 현존재 자신의 필연적 죽음에 대한 이해와 인식과 태도가 인간 실존을 파악하는 가장 특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이러한 종말로서의 죽음은 인간 존재의 변경 불가능한 조건이지만 죽음에 직면하는 실존의 양상은 가소성(可塑性)을 갖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죽음은 현존재의 종말로서 죽음을 향한 존재자 의 존재 안에 존재하고 있다. 죽음이 실존에 내재한다는 것은 현존재가 죽음과 관계를 맺고 그 의미에 대하여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죽음을 향한 존재는 존재론적으로는 죽음이 존재의 조건으로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론적으로는 존재의 조건인 죽음과의 실존론적 관계 속에서 이해와 실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존재는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에 대하여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최동희, 1989). 그래서 죽음은 현존재가 매번 떠맡아야 할 하나의 ‘존재가능성’(Seinsm행glichkeit)이다. 

죽음과 더불어 현존재 자신은 스스로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성에 직면하게 된다. 이 가능성에 있어서 현존재에는 세계내존재에 어떻게 관련되는가가 중요하다.

현존재의 죽음은 더 이상 현존재일 수 없다는 가능성이다. 여기서 존재가능성으로서의 현존재는 가장 고유하고, 다른관계가 끊어지고, 어김없으며, 시간적으로 무규정적인 가능성인 죽음을 앞지를 수 없음이 명백해진다. 죽음은 현존재의 절대적인 불가능의 가능성이다Heidegger,

1972).

이렇게 현존재가 결코 떠날 수 없는 죽음이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성이라고 한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 갖는 결정적인 의의가 저절로 드러난다. 죽음은 인간의 본질적인 가능존재를 비로소 가능케 하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다.

곧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인간성과 유한성을 동일시하는 것도 이러한 죽음의 실존론적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조주희,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