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하면 ‘보름달’, ‘가을 추수’, ‘강강술래’, ‘황금연휴’, ‘벌초’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과거에는 ‘보름달’, ‘가을 추수’, ‘강강술래’, ‘벌초’ 등이 주로 머리에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아직도 추석 때 고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속도로가 막히는 현상이 일어나곤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이번 추석에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추석은 풍성한 가을의 이미지보다는 벌초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아마도 제 고향인 제주도가 땅이 척박하여 농사가 주업이 아니라서 풍성한 가을 추수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전통 명절이라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제주도에서는 추석 때라고 해서 특별히 먹을거리가 풍부해지지는 않았으니까요.

이번 추석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에서 고향 방문 자제를 요청하면서, 제주도와 강원도 등 관광지가 붐비고 있다고 합니다.

예년에도 추석 연휴 때가 되면 고속도로 못지않게 인천공항이 붐볐었는데, 이번에는 해외를 나갈 수 없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제주도와 강원도 등 방문객이 많은 곳에서는 반갑기도 하지만,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인터넷이 일상화되고 나서 일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추석 연휴 때 가족끼리 콘도에 놀러가서 화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화상 제사를 장려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긴 식구들이 모여서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낸 후 음식을 나눠 먹던 풍경이 이제는 사라져야 할 유산이 되었으니까요.

요즘은 추석 다음날이 되면 식당에 가족 위주의 단체 손님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추석 때 만든 음식을 냉동실에 보관하고 먹어치우느라(?) 고생했었지만, 지금은 추석 음식은 간소하게 하고 외식을 하기 때문이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음식 장만하느라 가족 간의 갈등을 유발했던 명절 증후군을 벗어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추석은 물론이고 모든 사회적 현상은 시대가 바뀌면서 그 의미가 변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죠.

이제 추석은 더 이상 풍성한 가을 추수의 의미도 아니고, 가족이 모이는 명절의 의미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1년에 한두 번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고생하면서 고향을 찾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과거에는 고향을 떠난 사람이 드물었고, 대부분의 친척들이 고향에 있었기 때문에 명절 때 고향을 찾는 것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산업사회에서는 평소에 휴가를 쓴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모두가 쉬는 명절 때를 이용해 고향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평소에도 얼마든지 고향을 방문해서 부모님을 뵐 수 있으니 굳이 명절 때 고생하면서 고향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라는 옛 속담이 딱 들어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벌써 제 경우만 해도 고향을 떠난 지 오래 되다보니 조카들이 낯설어서 길거리를 가다가도 못 알아볼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 상황이 되다보니 제 자식들이 사촌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친하게 느끼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추석의 의미를 고향이 아니더라도 친척이 아닌 가족끼리 즐겁게 여행이라도 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게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과거가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오히려 강강술래라든가, 옛 풍습을 즐길 수 있는 시골로의 여행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