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폐렴예방주사와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려고 동네 병원에 갔다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진료를 하는 병원이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가 차려놓고 운영하던 병원에 아들이 의사가 되어 합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택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병원의 아버지는 자신의 의사 직업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진료를 받으면서 그 병원의 아버지 의사는 자신의 뒤를 물려받을 아들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든든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의사라는 직업이 좋으니까, 의사들이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고 파업까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병원의 아들 의사처럼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부모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없을 경우에는 얼마나 갈등이 심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근 정치인들이 일으키고 있는 논란들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주제가 바로 자녀에 대한 문제입니다.

조국 사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엄마 찬스 논란 등을 비롯해 장관 청문회의 단골인 위장 전입 등이 모두 이런 논란에 속하는 문제들입니다.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의 문제에 대해서 잘잘못을 따지자는 의미가 아니라 자녀들의 문제가 모두에게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일부 청년들은 “왜 나는 저런 부모를 갖지 못했나?” 하는 절망감이 들고, 일부 부모들도 “왜 나는 내 자식에게 저런 특혜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나?” 하는 자괴감이 들 것입니다.

그런 절망감과 자괴감이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의 자녀 문제에 대해 법률적 문제를 넘어 감정적 접근을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국민적 갈등은 더욱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고 싶은 심정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산과 사회적 지위만 물려주고,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주는 데 소홀하다면, 그건 자녀를 파멸로 몰아가는 처사입니다.

예부터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이 있는 것은 부와 함께 그 부를 감당할 능력을 함께 물려주기가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기업인들도 자신의 사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삼성, 현대 같은 대그룹은 물론이고, 일반 중소기업들도 자녀들에게 자신의 사업을 물려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서 주식 투기꾼들의 배를 불려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려면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미리 길러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고가의 아파트를 자녀에게 물려주려면 그 자녀가 그 아파트를 가질만한 능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가 물려주어서 재산이 많은 것만으로 자녀가 마치 사회 지도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면 얼마 되지 않아 그 자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니까요.

얼마 전 꽤 유명하고, 재산도 어느 정도 있는 어느 나이 많은 분이 자신은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경험과 추억을 물려주고 싶다고 자식들과 손자녀들과 함께 해외와 국내 여행을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그런 마음 자세를 한국의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이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도 자신의 삶의 가치를 깨닫고,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게 부모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기업인들은 자녀에게 다른 기업에서 신입사원부터 시작해서 경험을 쌓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그와 달리 한국은 단순히 기업주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실장, 이사 등 고위직으로 바로 입사를 합니다.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재산가들, 정치인들, 전문직 등 사회 지도층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